요즈음 생각에는
성경을 읽다보면 읽을 때마다, 읽는 시간과 장소, 나의 마음가짐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고 깨달아질 때가 많다.
반체제 운동가였던 문익환 목사는 시편을 가장 애독했다고 한다. 김수환 추기경은 시편 23편을 애송했다고 한다.
나도 시편 23편, 시편 1편은 잘 암송하는 편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삶이 팍팍한 이 시대에 고린도후서 1장 3절~7절 사이에 '위로'에 대한 말씀이 10번이나 나온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린도후서 1장 4절)'
요즈음 사 먹기 어려운 값 4천원에 한 그릇하는 칼국수로 저녁을 함께 하니 속이 가볍고 잘 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얻어 먹으니 더욱 좋다. 사준 이에게 부담을 덜 주는 것도 감사하다.
지금 같이 가진 게 부족하다고 남을 부러워 하고 많이 가진 자를 욕하고 사는 세대와 어려운 일은 하지 않으려 하면서 일자리가 없다고 하는 세대들. 어느 칼럼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조금만 이슈가 되어도 무조건 여론으로 몰매를 때리는 시대 풍조에다 선거로 모든 것을 심판하겠다고 벼르는 사람들이 난무하는 한국땅을 생각하면 답답해진다.
또한 많이 가진 자는 더 가지려고 탐욕으로 날을 세우고, 이웃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사회풍조도 더욱 양극화를 부채질하는 느낌이다.
사회 지도층이 비난을 받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는 세태에 대한 책임은 먼저 지도층에 있겠지만, 세상이 불만과 비난 일색으로 변해버린 책임을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하지 않을까. 소고기값 파동도 구제역으로 난리와 고통을 받은 이후에 보상도 받고 계약하지 않은 채 사육 두수를 마구 늘려오고 정부나 농협 등 관계기관에서 수량 조절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오로지 수입 사료에 의존하는 축산이 사료값 폭등에다 과잉 공급되는 국산 소고기, 수입산 소고기 때문에 송아지 값 폭락 사태를 불러 온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농업이 대안 없이 몰려가기식과 리더십이 없이 나아온 결과로 보인다. 한편 돼지고기의 유별난 인기로 지난 해 농가에 따라서는 5~10년 벌 것을 한꺼번에 벌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쨌든 전적으로 수입사료에만 의존하는 축산보다는 어떻게든 초지 확보와 방목까지도 가능한 소사육이 되어야만 할 것 같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로 두서가 없어졌지만, 우리나라의 여러가지 혼란상에 대해서 국가 지도층은 말할 것도 없이 도덕성과 장기적인 비젼을 가지고 흔들림이 없이 국가경영을 소신있고 강하게 이끌 지도자가 필요하다.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조절하고 적응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하겠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 만큼 부지런히 일하는 민족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대기업 위주로 국제적 경쟁력이 있는 것을 배아파 할 것만이 아니라 대기업 종사자들이 많은 노력과 투자를 통해서 우리의 기간산업을 스스로 키워온 결과이기도 하고, 앞으로는 정말 상생경영과 공존의 절대성을 대기업 경영진이 깨달아야 하겠다. 사회 각 부문에서도 자구책을 길러야 하겠다. 누가 공짜로, 아니면 정부가 해 주기를 앉아서 기다리는 식으로는 안되고, 스스로 각고의 노력과 지혜를 모아서 어려움을 헤쳐 나가야 한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특히 쓸데없는 과소비, 충동구매를 줄이고 수입 규모에 맞는 소비를 하고 마이너스 카드 사용을 절제해야 하겠다.
여러가지로 안타까운 우리의 사회현상을 볼 때마다 나는 아래 명언을 마음 속에 되새겨 본다.
'지옥의 가장 고통스러운 장소는 위기의 순간에 중립 만을 지킨 사람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