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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 권순자

유정 김용호 2016. 12. 30. 15:14

       


 

 

고등어

 

                                   권순자

 

 

마트 한켠에서 잡아올린 고등어 한 마리

굽는다

물결치는 파도를 잠재운다

노릇노릇해지는 바다

 

한때의 열망도 노릇노릇해진다

부석부석하게 부은 희망도 바싹하게 굽는다

사람들의 발길이 휩쓸려다니던 거리도 굽는다

모든 물결의 끝에는 뭍으로 향하는 그리움만

살지고,

그리움의 끝없는 행로에는 지독한 열병이 번져간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이

숨 막혀 허덕이던 순간에

자신을 배반한 물결을 버리고

고등어는 점점이 해탈식을 치른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밀쳐내는 파도를 타고

파도쳐 그 바다에게로 되돌아간다

헤엄치며

지느러미 물결에 철썩이며 나아가는

한 점 자유로 튄다

 

 

 

-출처 : 시집『우목횟집』(시평사, 2009)

-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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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어둑함을 뚫고 상상적 항진을 욕망하는

-권순자의 시 「고등어」를 읽고

 

생의 어둑함을 뚫고 항진을 욕망하는 고등어를 그린 시편이다.

화자의 시선이 가 닿은 것은 심해를 유영하는 고등어가 아니라, “마트 한켠에서 잡아올린” 고등어다.

이미 그 ‘고등어’는 야생의 활어가 아니다

하지만 ‘고등어’를 구우면서 화자의 시선이 “물결치는 파도”로 이월하는 과정을 이 시편은 담고 있다.

한때의 열망도 희망도 노릇노릇하게 구어 지는 그 시간.

물결 끝에서 번져오는 “뭍으로 향하는 그리움”과 “지독한 열병”이 화자의 마음을 적신다.

이렇게 고등어가 치르는 “해탈식”은, “끊임없이 밀쳐내는 파도를 타고/파도쳐 그 바다에게로 되돌아”가는 상상적 제의祭儀로 성격을 바꾼다.

이때 “헤엄치며/지느러미 물결에 철썩이며 나아가는/한 점 자유”야말로 화자가 깊고 어둑한 바다를 상상적으로 넘어서는 에너지가 아닐 것인가.

 

이렇게 “투명하게 빛나는 몸,/싱싱한 상처마다 포개지는 검은 멍들이/얼어 더욱 단단해진 파득거리는 정신이/자유로워지기 위해”(「과메기」) ‘바다’를 열망하는 존재자들을 애정 있게 관찰하고 시적으로 포착하는 권순자 시편은, “끈질긴 부리의 단단한 힘”(「나문재」)으로 “자유로운 물길에서 헤엄치던 기억들”(「곰소 여인」)을 가진 생명들을 따뜻하게 보듬어 안는다.

“세상과 맞붙어 날카롭게 흔들어대던/지느러미”(「활어」)를 가진 그네들을, 자유로운 기억을 가져다주었던 ‘바다’로 다시 되돌려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권순자 시인은, ‘바다’를 배경으로 하여, 삶의 가장 어둑한 현실을 은유하는 태도와 작법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이러한 태도와 작법은, 우리 시대에 권순자 시인만의 안목과 솜씨로 은유해낸 매우 개성적인 방법론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유성호 님이 쓰고 詩하늘에서 엮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