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시·수필

봉대미산을 오르는 다양한 사람들

유정 김용호 2011. 8. 4. 11:59

 

 

 봉대미산을 오르는 다양한 사람들


  봉우리가 큰 흙더미같아서 봉대미산인가.

  내가 사는 신성아파트에서 가장 가까운 야산인 봉대미산은 금오산 아침등산을 거의 포기하고 나서 가기 시작한 등산로다. 일주일에 겨우 2번 정도 가지만 인제부터는 횟수를 늘릴 생각이다.

  신성아파트에서 등산로 입구 콘크리트 오르막길을 지나면서 주말농장 하는 할머니를 만난다. 들깨모종을 지금 8월 초에 겨우 심어놓고 벌써부터 땅바닥에 가루농약을 뿌린다. 나이 드신 분이 정말 개념이 없으신 것 같다. 집에서 조금 먹게 될 들깨에 왠 농약인지! 우리 집에는 꽤 넓은 수십평 들깨밭에도 약은 절대로 치지 않는다. 퇴비나 비료 조금 주고 김만 매주면 잘 자라는 들깨에 왠 농약이란 말인가.

 언덕 길을 부지런히 올라가다가 한 쪽다리는 저는 70대 중반 희고 야윈 할아버지를 만난다. 정말 불편한 몸을 이런 야산오르기를 통해서  건강하게 회복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으로 보인다.

  수고하십니다. 진심에서 인사를 건네고 미안하지만 앞서 오른다.

  체육공원에 들어서면 양박이 지도하는 요가체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슨 구호를 맟춰서 팔다리 하리 돌리고 배를 때린다. 주로 50대 후반에서 60대 사이 사람들이 참여한다. 제일 뒤쪽에는 젊은 수녀가 배를 치고 있다.

  한 박은 30대 후반쯤 보이는 까만 도복을 입은 여자이고 한 박은 60대 아저씨다. 작은 단상에 올라서 단체 체조를 지도하는 데 단상 아래 두 사람의 이름이 있어서 나는 양박으로 부른다. 카세트를 틀어놓고 신나게 팔다리를 흔드는 데. 얼마나 운동이 되는지. 신념을 가지고 겨울이나 여름이나 이른 아침부터 열심히 단체체조를 한다. 

  해발 200m도 안되는 봉대미산 정상에서 50대 초반인 오리가든 주방 아주머니를 만난다. 공주에 집이 있다는데 아마 조선족 아주머니로 짐작된다. 말이 별로 없고 머리에 핑크빛 스가프를 쓰고 새벽에 제법 멋을 내고 칼라 등산복도 입고 올라온다. 별로 멋있어 보이진 않지만 깔끔하게 다니는 것이 식당에서 보기와는 딴판이다.

  정상을 지나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오소리 약수터다. 물 한 모금 마시면 꼭 할머니 두어 분이 약수물 뜨러 온다. 물도 가져가고 다소나마 운동도 되겠지.

  한낮 지난 오후에는 예산고등학교 학생들이 산을 가로질러 하교길로  이 산길이 이용된다. 시골스럽게 산길로 등하교를 하니 옛날 시골맛이 난다.

  인제 다시 빙 돌아서 마이크봉 방향으로 다시 산을 오르려고 주말농장 자리를 지난다.

  아침 일찍 고추밭의 고추 머리를 치는 60대 아저씨.

  푸른 고추가 제법 달렸다.

  왜 고추 머리를 자르세요?

  지금부터 나오는 꽃은 붉은 고추가 안 되니까 잘라 버리지요. 약을 치지만 않았다면 고추순 나물 해먹으면 참 좋긴 하지만...

 나도 아내 따라 주말농장 고추를 키우지만 미리 고추순 끝 자르는 건 몰랐네. 그래도 아까운 걸. 그리고 여기도 그 놈의 농약 예사로 생각하는 분이 있구만. 하긴 우리도 부득이 두 번 정도 탄저병 때문에 고추에 살균제를 치긴 했지만 어지간해서는 우리 집 주말농장에는 약을 치지 않고 버틴다.

  다시 땀도 나고 숨도 차지만 마이크봉까지 열심히 오르니까 이창수 전공주산업대 교수를 만난다. 어제는 오랜만에 만난 자기보다 젊은 다른사람을 보더니 ‘충성’하고 경례를 붙이더니. 오늘은 마이크봉 정상에서 한 아저씨가 저쪽을 보고 외친다.

  나는 할 수 있다!!

  I can do!

공주대교수가 영어로 외친다. 그러면서 말을 덧붙인다.

  내가 이렇게 하는 건 선생님 함성에 기를 더 넣어주는 거요.

 (우스꽝스럽고 썰렁한 사람들이네.)

  안녕하세요.

  지나가고 나자 저이는 모 고등학교 선생님이라고 귀띔을 해준다.

 (괴퍅해서 혹 학생들 괴롭힐 스타일은 아닌지)


 어제 같이 회식을 하고 여러 가지로 얘기를 나눈 진종한 한전지점장이 올라온다. ‘나는 매일 올라오는데, 봉대미산 오른다더니 한 번도 안 보이던데요’하더니 오늘 처음 산에서 만났다. 나도 이 양반을 만날까 기대를 하고 새벽 한시에 잠자리에 든 데도 불구하고 6시에 부지런히 산을 오른 것이었다.

  오늘 보지는 못했지만 허길용 대흥공업사 사장은 산 위 평지길을 매일 6번 왕복하고 내려간다고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안 빠지고 올라온단다. 

  한 아주머니는 버섯박사란다. 7월경에 비가 오고 난 후 야산에도 먹는 버섯이 제법 있다고 한다. 먹는 버섯이 어떤 것인지 잘 알면 좋으련만, 나는 기껏 아는 게 표고버섯, 싸리버섯, 능이버섯, 송이버섯, 그리고 귀한 영지버섯 등 뿐이다.

  체육공원에서 하산길로 들어서면서 진 지점장이 이상하다던 아저씨를 만난다. 쳐다보지도 않고 건성의 인사가 건너 온다.

  안녕하세요.

  예, 수고 많습니다.

  다소 젊어 보이는 이 아저씨는 둥글넓적한 플라스틱 빈 우유병을 양손에 두 개씩 들고 다닌다. 물을 뜨는 것도 아니다. 그냥 산에 오르면서 항상 가지고 다니는 모양이니,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지만 개의치 않는다. 열심히 산을 오르면서 존재감을 나타나는 것 같다.  


  장마비가 지나고 나서는 이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다들 아침부터 건강 챙기느라 열심히 아침 등산을 한다. 낮에 만나는 사람들과는 달리 이해관계도 없이 자연 속에서 노출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좀 더 사람사는 느낌을 가지고 대하게 되는 것이 아침 등산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다.

  나는 아침운동이 목적이라서 사람들과 산에서는 별로 얘기를 나누지 않는 편이다. 다들 겉모습만 보아서는 그저 평범하고 대개 늙어가는 군상들로만 보여서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러나 자주 산을 오르다보니 자연히 여러사람을 만나게 되고 얘기도 나누다보니 참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하나의 사회임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