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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온 글들

2.23. 강영우 박사 별세 그리고 마지막 편지

by 유정 김용호 2012. 2. 27.

 

 

 

국내 분향소에도 추모 발길

 

 시각 장애인으로 2001~2009년 미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지낸 한국계 미국인 강영우(68) 박사가 국제로터리재단 평화센터의 평화장학금으로 25만달러(약 2억9000만원)를 기부했다. 그가 지난 연말 췌장암과 함께 '남은 삶은 한 달 남짓'이란 시한부 생명 진단을 받은 후 세상에 고하는 아름다운 작별 의식의 하나로 기부를 택한 것이다.

이번 기부에는 강 박사의 두 아들도 동참했다. 강 박사가 20만달러, 안과 전문의인 (한국명 진석)과 백악관 선임 법률고문인 크리스토퍼(진영)가 2만5000달러씩 냈다. 이렇게 25만달러를 '강영우 패밀리'란 이름으로 재단에 기부했다. 국제로터리재단은 9일 미 워싱턴 DC에서 강 박사를 위한 감사 행사를 열었다. 강 박사는 이 자리에서 "많은 축복을 받고 살아온 삶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기부를 결정했다. 제 삶을 여기까지 이끌고 지탱해 준 사랑에 대한 빚을 갚으려 한다"고 말했다.  [이상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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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를 딛고 한국인 최초로 미국 백악관 차관보까지 오른 강영우 박사의 영정 앞에서 연세대 2년 후배인 김영 인하대 교육대학원장은 고인이 대학시절 즐기던 농담 한 토막을 떠올렸다.

“어제 텔레비전 봤냐? 그 여배우 정말 예쁘지 않디?” 눈이 보이지 않는 강 박사의 농담에 김 원장은 말문이 막히곤 했다. “눈은 멀쩡해도 편견에 가려 있던 저에게 ‘우린 다 같은 인간일 뿐’이란 걸 일깨워준 사람이죠.”

25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은 강 박사를 추모하는 발길로 붐볐다. 미국 워싱턴 인근 자택에서 23일(현지 시간) 췌장암으로 별세한 고인(향년 68세)의 분향소가 이곳에 차려졌다. 추모객들은 분향소를 지키며 고인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대학 후배 정진호 경쟁력평가원장은 20년 전쯤 강 박사와 스키를 타러 간 일화를 꺼냈다. ‘발에 닿는 감각으로 길이 맞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데 스키도 마찬가지’라는 게 강 박사의 지론이었다. 강 박사는 손바닥에 스키장 코스를 그려 달라고 한 뒤 코스를 익혀 혼자 스키를 타고 내려왔다. “영우 형은 숙소에 있는 탁자와 의자 위치를 외우고 비장애인처럼 다녔어요. 다른 사람이 불을 켠 채 방을 나가면 대신 불을 꺼줄 만큼 비장애인에 대한 배려심이 많았죠.”

강 박사의 맏아들 진석 씨가 하버드대 입학 당시 쓴 에세이에는 어둠 속에서 책을 읽어주던 아버지에 대한 대목이 있다. 보통 아버지는 불을 켜고 책을 읽어 주니 눈이 부셔 잠을 못 자지만 내 아버지는 불을 끈 채 마음속에서 이야기를 꺼내 읽어줬다는 얘기다. 진석 씨는 아버지 눈을 고치겠다며 의대에 갔고 유명 안과의사가 됐다.
                                                                            [이상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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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우 박사의 유족으로는 부인 석은옥 여사와 아들 진석(39.폴 강) 안과전문의, 진영(35.크리스토퍼 강) 백악관 선임법률고문이 있다. 강영우 박사의 장례식워싱턴 D.C 인근 버지니아주의 한인 중앙장로교회에서 다음달 4일 추도 예배로 치러질 예정이다.

강영우 박사 별세 소식에 네티즌들은 “강영우 박사의 삶의 자세에 존경을 보냅니다” “강영우 박사 별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강영우 박사 같은 분이 있어 진정한 사랑을 느낍니다” “강영우 박사 이야기 참 감동적이었는데” “장애인 인권의 아버지 강영우 박사님 이제 편히 쉬십시오” 등의 애도를 보냈다.

 

[ 고 강영우박사의 마지막 편지 ] 

 

두 아들에게

이제 너희들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내가 너희들을 처음 품에 안은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너희들과 이별의 약속을 나눠야 할 때가  되었다니

좀 더 많은 것을 나누고,좀 더 많은 것을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이 밀려온다.

하지만 너희들이 나에게 준 사랑이 너무나 컷기에,

그리고 너희들과 함께한 추억이 내 맘속에 가득하기에

난 이렇게 행복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단다.

해 보기도 전에는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나의 말을

가슴 속깊이  새긴 채로 자라준 너희들이  고맙고,

너희들의 아버지로 반평생을 살아왔다는게 나에게는 축복이었다.

내가 떠나더라도 너희들은 혼자가 아니기에

너희들 곁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 항상 함께 할 것이기에

아버지는 슬픔도,걱정도 없다.

나의 아들 진석,진영이를 나는 넘치도록 사랑했고 사랑한다.

 

***

 

사랑하는 아내에게

당신을 처음 만난게 벌써 50년전입니다.

햇살보다 더 반짝반짝 빛나고 있던 예쁜 여대생 누나의 모습을 난 아직도 기억합니다.

손을 번쩍 들고 나를 바래다 주겠다고 나서던 당돌한 여대생,

당신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날개없는 천사였습니다.  

앞으로 함께 할 날이 얼마남지 않은 이 순간에 나의 가슴을 가득 채우는 것은

당신을 향한 감사함과 미안함입니다.

시각장애인의 아내로 살아온 그 세월이 어찌 편했겠느냐.

항상 주기만 한 당신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해서,

좀 더 배려하지 못해서, 너무 많이 고생시킨 것 같아서 미안하다.

지난  40년간 늘 나를 위로해주던 당신에게 난 오늘도 이렇게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미안합니다.

더 오래 함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내가 떠난 후 당신의 외로움과 슬픔을 함께 해주지 못할 것이라서..

나의  어둠을 밝혀주는 촛불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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