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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단추 - 손택수

by 유정 김용호 2013. 6. 19.

 

꽃단추

 

내가 반하는 것들은 대개 단추가 많다
꼭꼭 채운 단추는 풀어보고 싶어지고
과하게 풀어진 단추는 다시
얌전하게 채워주고 싶어진다
참을성이 부족해서
난폭하게 질주하는 지퍼는 질색
감질이 나면 좀 어떤가
단추를 풀고 채우는 시간을 기다릴 줄 안다는 건
낮과 밤 사이에,
해와 달을
금단추 은단추처럼 달아줄 줄 안다는 것

무덤가에 찬바람 든다고, 꽃이 핀다
용케 제 구멍 위로 쑤욱 고개를 내민 민들레
지상과 지하, 틈이 벌어지지 않게
흔들리는 실뿌리 야무지게 채워 놓았다

열린 건 닫고 싶고, 닫힌 건 열어보고 싶어지지. 순서와 기다림을 배우는 단추 열고 채우기. 그러고 보면 지퍼는 성급한 고속도로고, 단추 여닫기는 생각하며 걸어가는 조롱길 이겠구나. 낮과 밤, 삶의 다리 건너며 세월의 단추 해와 달 여닫던 날들. 산과 들에 핀 꽃도 단추구나, 무덤가 노란 민들레와 하얀 들국화 야무진 뿌리실로 달아놓은 신의 꽃 단추. 시인에겐 지상에 핀 동그란 꽃들도 땅 옷 잠그고 벗는 금단추 은단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