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푸레나무
김태영
물푸레나무는
물에 담근 가지가
그 물, 파르스름하게 물들인다 해서
물푸레나무라지요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는 건지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는 건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 어스름
어쩌면 물푸레나무는 저 푸른 어스름을
닮았는지도 몰라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부끄럽게도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은 어디서 오는 건지
물 속에서 물이 오른 물푸레나무
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
물푸레나무빛이 스며든 물
그 파르스름한 빛깔이 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빛깔일 것만 같고
또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내가 갖지 못한 빛깔일 것만 같아
어쩌면 나에겐
아주 슬픈 빛깔일지도 모르겠지만
가지가 물을 파르스름 물들이며 잔잔히
물이 가지를 파르스름 물올리며 잔잔히
가난한 연인들이
서로에게 밥을 덜어주듯 다정히
체하지 않게 등도 다독거려주면서
묵언정진하듯 물빛에 스며든 물푸레나무
그들의 사랑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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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푸레 나무 시인 김태정씨 해남서 타계
‘민중서정시인’ 평가…2011. 9. 8일 오전 발인
고 김태정 시인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의 시인 김태정씨가 6일 해남군 송지면 달마산 아래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48세.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난 김 시인은 1991년 계간 ‘사상문예운동’을 통해 등단, 13년 만에 첫 시집 ‘물푸레나무를 생각하는 저녁’을 발표했으며 올해 초 서울생활을 접고 해남에 내려와 암투병과 시작에 전념하며 지냈다. 또한 TV도 없이 라디오를 벗 삼고, 작은 마당에 반찬거리 야채를 일구면서 시를 썼는데 생전 “시가 저를 숨쉬게 하는 유일한 통로”라며 시 쓰기 외에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주위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그녀는 고정희 시인처럼 결혼도 하지 않고 맑은 영혼의 글을 쓰고 살았기에 ‘고정희 시인 별’이라는 별칭을 갖기고 했는데 공교롭게도 고정희 시인의 고향 해남에서 마지막을 보냄으로써 숙연함을 더하고 있다. 김시인의 시는 문단으로부터 ‘민중서정시’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80년대의 억센 민중시가 구현하지 못한 소담한 일상을 말갛고 깊게 표현했다”고 평가되었다. 그는 “개당 50원짜리 실밥 따기에 코피를 쏟으며”(‘시의 힘 욕의 힘’) “학비벌이 부업으로 야간대학을 다녔고”(‘까치집’),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색인 교정 아르바이트 일당 4만원으로 장만한 286컴퓨터로 시를 쓴다”(‘나의 아나키스트’). 요즘도 간간이 쓰는 그림동화의 글 부업은 그에게 “밥이 되고, 공과금이 되고, 월세가 된다”(‘궁핍이 나로 하여’). ‘네 뼈로 내 뼈를 세우리/네 살로 내 살을 보태리…은빛 비늘의 눈부심으로/무디어진 내 눈물을 벼리리/어느 날 문득 육지를 보아버린/네 그리움으로/메마른 서정을 적시리….’(‘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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