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리더십
1.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않는다
순신의 할아버지는 참봉(參奉)으로 임명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조광조의 뒤를 따르다가
기묘사화(己卯士禍)때 화를 입고, 아버지 이정(貞) 역시
벼슬길이 막혀 생활이 어려워순신이 8세때 외가 아산으로 이사갔다.
2.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않는다
28세때 무과 응시 – 말에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 낙방, 32세인 1576. 2월에 식년무과에 재도전하여
병과(丙科)
4등으로 어렵게 합격한 다음, 함경도 동구(東仇)비보(非堡)의 권관(權官)으로 첫 발령후14년동안 삼수갑산의 오지만을 전전했다.
3. 윗사람의 지시라 어쩔 수 없다고 하지 않는다
36세인 1580년, 발포 수군만호로 재직시 직속상관인 잔라좌수사 성박이 발호만호영 객사 뜰에 있는
오동나무를 베어 거문고를 만드는 것
을 반대했다가 고초를 치렀으며, 2년뒤에는 군기(軍器)경차관서익의 무고로 파직 당하기도 했다.
43세인 1587년 녹둔도 둔전관을 겸임할 때 북병사 이일(鎰)의 무고로 두 번째 파직을 당하고
백의종군하였다.
4. 몸이 약하다고 실망하지 않는다
이순신은 평생 고질적인 위장병과 전염병으로 고통 받았으나 부하 병졸들에게 내색하지 않았다.
5.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이순신은 왜적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 진 후에야 비로소 47세 나이에 인정받기 시작했다.
6. 조직의 지원이 없다고 탓하지 않는다
이순신은 스스로 둔전(屯田)을 경작해서 군자금을 만들었고, 스물세 번 싸워 스물세 번 모두 이겼다.
7. 윗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않는다
이순신은 끊임없는 임금의 오해와 의심으로 모든 공을 빼앗긴 채 옥살이를 했으나, 명량해전에서
* 상유십이(尙有十二) 순신불사(舜臣不死) *
(나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 있고, 나 순신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라는 상소를 올린
후, 극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대승을 거두어 전쟁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8. 희생으로 조직을 구한다
이순신은 군왕 선조와 공존이 힘들 것을 예견하고 백성과 부하의 안녕을 위해 무력 대립이 아닌,
왜적이 물러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스스로
죽음을 불사하는 희생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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