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사랑
김용호
하늘을 향해
푸른 줄기 뻗어
노란 꽃망울 터치더니
마디마다 하얀 촉수를 내린다
아직은 아니야
캄캄한 장막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
땅속은 너무 무서워
개미굴 속처럼 헤맬지 몰라
벌판은 더욱 두려워
겁 없이 길을 나선 지렁이처럼
방향감각을 잃고 말라 죽는 것은 아닐까
생장점은 잠시 초점을 잃고 방황한다
길은 하나밖에 없어
낮아지고 또 낮아져야지
원래 사는 게 이런 거 아니겠어
더는 햇살을 견딜 수 없어
불안한 장막을 비집고
어둠 속으로 촉수를 뻗는다
여린 촉 끝에서
한 여름밤의 이슬
뜨거운 대지를 가로지르는 바람
귀뚜라미 노랫소리를 따라
한 생명이 시작되고 여름이 익어간다
하나는 외로워서 안 돼
쌍태를 밴 누에고치를 생각해 봐
굼벵이가 유혹하듯 속삭인다
점점 불러오는 배를 맞대고
두 쪽 사랑이 영근다
2016. 9.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