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형기
나무는
실로 운명처럼
조용하고 슬픈 자세를 가졌다.
홀로 내려가는 언덕길
그 아랫마을에 등불이 켜이듯
그런 자세로
평생을 산다.
철 따라 바람이 불고 가는소란한 마을길 위에
스스로 펴는
그 폭넓은 그늘......
나무는
제자리에 선 채로 흘러가는
천 년의 강물이다.
(이형기·시인, 1933-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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