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번째로 같은 길을 지나쳤다 [김광명]
나는 도착지를 과거에 두고 다니는 사람이다
어떤 걸 가질래? 프랑스식 발음으로, 3초동안 뜨겁고 30분 동안 식
어버리는 땀의 서쪽
나는 헐겁게 세운 이정표 사이로 헤엄치는 방법을 안다 건물을 동공
속에 넣고 뭉그러뜨리는 수식도
길은 하나의 이미지다 샐러드처럼 알록달록하다 나는 서 있다 서 있
으면서 움직인다 흩어져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라서
오늘은 완벽해, 선언문을 들고 나서면 항상 처음 가는 길
누나 동생 이모 아버지 형과 내가 사는 동네
지도를 끌어당기면 딱 그만큼의 거리로 어색해지거나 울고 싶어진
다 매일 주저앉기 좋은 길 아빠가 가르쳐 주는 길은 틀린 것 같고
어딘지도 모르고 자꾸 가면서 방향을 풀어 놓는다
헤매는 것에도 영화필름처럼 영사 기능이 있다 서치라이트를 따라
걷는 원형 방황이다 출발점은 도착점이다 보풀을 일으키는 기억이 건
물을 바꾼다 분명 왔던 곳인데 새로운 곳
내게는 거울에 비친 모습과 달력을 추상화로 보는 능력이 있지만
3시 방향이야 하고 말하면 시계만 똑딱거린다 머릿속을 유괴해 바
깥에 꺼내놓는다
보이지 않는 길을 잡아당기면 부에노스아이레스공항 교회 기차역
스케이트장 오락실까지 따라 나온다 찾아가는 일은 어려운 것만이 아
니다 아예 되지 않는 일을 되게 하는 기적이다
왠지 예감이 좋으면, 모르는 길을 가고 있다
다 온 것 같은데
지상에서 온 사람들은 저마다 제 앞으로 오줌을 갈기며 산다
모든 퇴근은 막다른 골목으로 향하고 나는 낮에 갔던 곳을 밤에는
찾아가지 못한다
누가 어떤 이유로
그드들을 데려왔는지 왼발, 춤을 추며 왼발
다리는 움직이기 위해 태어난다
뒤축 사라진 피아졸라풍으로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길을 품고 다니는
- 시와사상 2022 하반기 신인상 공모 당선작중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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