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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 시.수필 등

글쓰기에 관하여 2.

by 유정 김용호 2024. 11. 9.

발코니에 놓아 둔 야생화초가 꽃을 피울 때나 기다렸던 꽃이 처음으로 꽃잎을 열었을 때 이를 바라보는 희열은 아마도 생명에 대한 공감일 것이다. 황금물결, 댐에서 쏟아지는 물줄기, 가슴에 출렁이는 것들이 고여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어느날 문득 일상에 묻혀 사는 나를 다시 보게 만드는 사물, 자연, 일을 만나 그것들이 그 일상과 적당한 거리를 만들게 하고, 그 거리에 서서 자신과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게 만드는 것 그것이 글인 것이다.

 

거창하게 문학이라는 말을 하기가 좀 부끄러운지도 모른다.

... 그러나 이젠 쓴다는 것에 좀더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는 듯하다. 여태 애써 들으려 하지 않았던 자작나무숲 우듬지의 사연도 들어보고, 저 아프트 화단의 라일락에게도 나를 보여주고 싶다. 이 가을 절름거리며 버티고 있는 내 얕은 뿌리의 흔들림이 땅을 비집고 내릴 수 있도록, 추운 겨울 잘 견딜 수 있도록 나를 양질의 보살핌으로 가슴을 따뜻이 데우고 싶다. 왜 자꾸 쓰느냐고?

나는 배설을 한다고... 참을 수 없는 내 안의 버거움들을 쏟아내는 거라고...

- 조영혜, <참을 수 없는 내 존재의 버거움> 중에서

 

조영혜의 배설은 소모적인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배설이다. 나 자신을 내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양질의 보살핌으로 나를 보살피는 일이다. 절름거리며 버티고 있는 내 얕은 생각의 뿌리가 대지 깊숙이 뿌리내리고 튼튼해지게 하려는 일이다. 글을 쓰는 동안 자작나무 우듬지에서 새순이 돋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글을 쓰는 동안 라일락에게도 나를 보여주고 라일락 꽃과 마음을 서로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시는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소리를 귀담아 들었다가 그걸 베껴 적는 일이라고 말하는 시인이 있다. 특히 서정시는 자연과의 교감, 정경교융((情景交融)하는 행위가 곧 글을 쓰는 일이다.

 

나에게 시는 허기진 배를 채우는 본능이다. ... 나에게 시는 결핍된 언어에 대한 보상이다. 이루지 못한 꿈이다. 언어가 주는 짜릿함 그 희열에 침몰하고 싶다.’라고 박정숙은 <나에게 시는>에서 말한다.

문학의 토양은 상처다. 결핍이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고 내면 깊숙한 아픔이 시의 밭이다. 그 아픔을 아름다움으로 변용시킬 수 있는 장르가 문학이다. 글을 쓴다는 것이야말로 자타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하는 의료행위이다.

시는 정신적 허기를 채우기 위한 행위이며 결핍된 언어에 대한 보상이며, 대화다운 대화에 대한 욕구,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욕망이다.

 

슬프고 화나는 것을 글로 방출하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안정된다. 글을 통해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가능한 셈이다. ... 또한 뭔가 답답한 일이 있어도 글로 적어 본다. 적는 과정에서 일이 정리되면서 의외로 손쉽게 해결될 때도 있고, 굳이 그 일이 풀리지 않는다 해도 우선 마음이 차분해져 다른 대안을 찾는 융통성을 얻을 수 있다.

... 격렬해도 좋고 잔잔해도 좋다. 다만 중요한 것은 울림’. 읽는 이로 하여금 공명하도록 만드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문학이다,

- 반윤정,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중에서

 

미풍에 흔들리는 나뭇잎만 봐도 눈물이 핑 도는 벅찬 감정들을, 문학을 하면서 좋은 점은 나의 내면의 세계를 글로 풀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 혼자서 끙끙 앓았던 내면의 세계를 하나 하나 끄집어내어 맑은 영혼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 전영순,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중에서

 

글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힘은 남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다. 미풍에 흔들리는 나뭇잎만 봐도 눈물이 핑 도는 벅찬 감정들이런 정서가 없이 글을 쓸 수는 없다. 이런 소중한 감정이 정서다운 정서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가꾸고 다스리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는 사이 혼자서 끙끙 앓았던 내면의 세계가 하나씩 맑은 영혼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어느 때부턴가 시는 만나고 헤어지는 아픔과 삶의 고통 속에서 늘 곁에서 애인이 되어 주었다. 삶이 절망이어도 쓸쓸하여도 나의 토해냄을 받아주는 나의 시는 내가 심고 가꾸고 보살펴야 할 밭이었고 다시 내게 돌려주는 향기이고 꽃이었다.

- 김용미,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중에서

 

산을 만나고 아파트 정원수 위로 날아다닌는 직박구리를 만나고, 각자 개성일 가지고 서 있는 나무들의 숨결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내가 문학을 만나면서부터이다. ...

문학과의 만남은 내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사물, 그리고 살아있는 생물들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문학 안에서 세상 모든 사물은 생명이 없는 것은 없다. , , , 귀를 가지고 각각 묘한 매력을 풍기며 나를 바라본다. 호소한다. 미소 짓는다. 그들을 가슴으로 가져와 다듬고 입히고 부풀리고 깎아내며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했을 때에는 세상 무엇도 부럽지 않을 뿌듯함과 함께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 윤선희, <나는 왜 문학을 하는 이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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