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작 시·수필

오늘도 봉대미산을 오르면서

by 유정 김용호 2011. 12. 7.

 

오늘 아침은 평소와는 좀 다른 새벽 야산 등산길이었다.  

산 지가 얼마 안되는 최신 LTE 스마트폰도 불통사태가 난다는 것을 보여 주는 바람에 시간도 좀 늦었고, 모자에 장착하는 랜턴도 등산복 외투를 사무실에 걸어두고 퇴근한 탓에 모자도 없이 캄캄한 등산길을 나서야 했다. (스마트폰은 몇 시간후 배터리를 다시 뺐다가 끼우니까 전원이 켜졌다.)

  4시 40분 모닝콜도 놓치고 엎드려서 다니엘서를 읽다가 몸을 억지로 추스렸다.  그래도 지난주 부터는 안 빠지고 매일 새벽기도를 갔었는데 오늘 하루도 놓치면 안되겠다 싶어서  평소 새벽에 나가던 금오교회는 못 가고 서둘러 일어나서 아침 6시 5분전 성경을 들고 제일 가까이 있는 개척교회인 삼일장로교회를 찾았다. 일전에 아침 6시에 새벽예배를 본다는 교회 앞 광고판을 본 적이 있어서 찾았는데, 2층에만 불이 켜져 있고 문이 잠겨 있었다.

  문 앞에서 조금 서성거리다가 봉대미산을 향한다. 새벽등산도 할 겸, 야산 정상에서 기도도 하고 오리라 생각하고 성경을  왼손에 든다.

어제까지는 길가 주차된 내 차 안에 항상 셩경을 넣어두고 등산길을 올랐지만 오늘은 성경책을 들고 조금은 어색한 등산을 한다.

가로등이 입구부터 드문드문 있지만 불도 없이 어두컴컴한 산길을 더듬어 오른다.

 

  체육공원 가까울 무렵 어제 보이던 50대 이전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인사를 한다. 어두운 길에 가로등도 희미하고 모자를 쓰고 흰 마스크를 했으니 전혀 인상착의를 알 수 없는데 고개를 앞만 향한 채 안녕하세요 하고 내려간다.  예 수고하십니다 의례적으로 인사를 받는다. 

정상 방향으로 오른쪽을 가다가 봉대미산 정상 가까워서였다. 누군가가 거꾸로 누워서 발을 하늘로 치켜들고 작은 바위 위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컴컴한 데다 갑자기 시커먼 물체의 인기척이 들리니 순간적으로 몸이 움찔한다.  이상하게스리 사람을 놀라게 하는구만.  랜턴 같은 것도 좀 미리 켜 놓고 길가에 있을 것이지. 하긴 나도 지금은 플래쉬 하나 없지만 말이다.

  곧 이어 정상이다.

  벤치에 앉아서 저 아래 성산교회 흰 네온간판 글씨가 보이고, 더 멀리 다른 교회의 장식이 별로 없는 수수한 크리스마스트리도 보인다.

잠시 앉아서 시편 23편을 2번 암송하고 간단히 오늘 하루도 좋은 하루, 보람찬 하루가 되게 해주시기를 기도한다. 수많은 날들을 보내면서 나는  하루 중 얼마나 의미있는 시간을 영위하는 것일까. 오늘은 좀 더 의미있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이다.

  다시 더듬어 취수장 길을 내려가기 시작하고 '나는 할 수 있다' 선생님을 만난다. 큰 소리로 '나는 할 수 있다!' 한 번 외치는 소리를 듣고, 서로 오르고 내려간다.  나중에 이 고등학교 선생님은 틀림없이 저쪽 마이크봉에서 또 한번 구호를 외칠 것이다. 매일 아침 정말 성실하게 두번씩 혼자 이 구호를 외친다. 'I can do' 이교수는 요즈음 6시 40분이 넘어서야 등산길을 오르므로, 종전처럼 마이크봉에서 두 사람의 구호 선후창을 들을 수 없어서 아쉽다. 나중에 나라도 마이크봉에서 후창을 해 줄까?

  오소리 약수터에서 한 모금 마시고 멀리 좌측으로 산등성이 위의 가로등을 보면서 마이크봉으로 향한다. 약 한 달전에 새로 지은 콘크리트 건물 앞 개장에 매여 있는 흰 개 한 마리가 오늘도 열심히 짖어댄다. 산책객들이 모두 좀 성가시겠다.  이 녀석 지능으로는 언제쯤이나 매일 지나다니는 사람 보고 안 짖을까.

  약간 숨이 찰 무렵이면 마이크봉, 내 첫 운동코스에 도착한다.

회전발판 위에 서서 허리를 좌우로 몇 번 휘두르고 나서 푸샵을 한다.

어제 겨우 33개 했는데 오늘은 자신이 없다.  15개 헤아리고 다시 겨우 15개를 한다. 에라 내친 김에 다시 다섯 개를 더 하자고 하면서 마지막에는 팔이 후둘거릴 정도로 억지로 푸샵을 하고 나니 모두 35개다. 등에 땀이 배고, 볼에 땀이 제법 끈적인다.

돌아서 가는 발걸음에 '나는 할 수 있다!' 라고 외치는 소리가 마침 들린다. 역시 오늘도 어김없이 반복을 한다.  

기회가 되면 아래와 같은 더 좋은 자기긍정 구호도 있다는 걸 알려 주리라.

 

   잠깐 소개를 한다.

 "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  [그도 할 수 있고 그녀도 할 수 있는데, 왜 나라고 못 하겠는가!]

 미국 실리콘밸리의 성공신화 김태연 회장 - 그녀는 태권도 사범이자 6개의 회사를 거느린 TYK회장이면서 미국 김태연 토크쇼의 주인공이다.

 경북 김천에서 여자아이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냉대를 받으면서 자라나 가족과 이민 간 미국 버몬트에서 어린 시절 배운 태권도를 알리기 시작한다. 동양 여성으로서의 차별대우에도 굴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친구로 다가가는 노력을 기울여 한 고등학교에서 태권도를 가르치게 된다. 사회 적응을 못하는 학생들에게 태권도의 수양정신을 가르치는 학생들의 정신적인 어머니이자  태권도그랜드마스터로서로서 성취를 이루었다.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컴퓨터 회사를 설립하고  언제나 '할 수 있다'라는 신념과 열정으로 성공신화를 이루어 내었다.

 

   체육공원에서는 추워서인지 며칠전부터 단학체조를 하지 않는다. 70 넘은 박씨 아저씨와 40대 여성 리더 박씨가 항상 열심히 하던데 빈 자리가 좀 아쉽다. 체육기구로 다가가서 허리 옆으로 흔들기와 하늘걷기를 한다. 역시 하늘걷기가 허벅지 운동이 잘 된다.

다시 등에 제법 땀이 흐르고 조금은 운동을 했다는 만족감이 든다. 시간은 6시 50분이 다 되어 가고, I can do 이교수가 올라 온다.

내려가는 길목 끝에 상사초가 어스름한 어둠 속 플라타너스 낙엽과 함께 고개를 들고 있다.

상사초 너도 열심히 겨울을 맞이 하고 있고, 나도 이 새벽에 작은 열심을 내어보는구나. 삶이란 스스로를 구속해 보기도 하고, 없는 습관도 만들어 보기도 하면서 나름대로의 행로를 엮어가는 게 아닌가 싶다. 새벽잠도 달콤할 수 있겠지만, 추운 날씨에 식은 땀 씻어내는 이틀만의 게으런 샤워의 맛이 시원하기도 하다.   

 

 

 

 

 

 

 

'자작 시·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멸치  (0) 2011.12.14
새벽에 닦는 마룻바닥  (0) 2011.12.14
상사초  (0) 2011.11.29
태고의 구름바다에서  (0) 2011.11.29
삶이 아름다운 이유  (0) 2011.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