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작시는 마지막에 **
이용주 감독의 <건축학개론>은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카피처럼, 어느 정도는 짐작 가능한 ‘우리들의’ 첫사랑 이야기다.
90년대에 울려대는 삐삐를 붙들고 공중전화로 뛰어간 기억 있는 사람이라면,
가방에 넣은 씨디플레이어 속 씨디가 튈까봐 뛰지도 못하고 조심조심 걸어 다녀 본 기억이 있는 세대라면,
흠뻑 몰입하게 될 그때 그 시절. 처음 누군가를 좋아했던 기억이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누군가가 좋아서 모든 것이 좋아지는 경험이 새롭고 즐겁고 가슴 벅차면서도,
이 마음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숨겨야 하는 건지 머리만 쓰다가 급기야 벽에 머리를 쿵쿵 찧고,
이불 속에 들어가 한숨에 취해 잠들던 그 시절의 이야기다.
왜 어떤 것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까?
왜 어떤 것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까? 첫사랑은 처음이기 때문에 아련한 걸까? 이뤄지지 않아서 아련한 걸까? 그렇다면 이뤄지지 않은 모든 사랑이 그렇게 아련한 걸까?
처음이라서 혹은 미완이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영화를 보며 가장 아련했던 대사는 이런 것이었다. 서연의 생일날, 두 사람은 동네에서 먼 곳까지 나가서, 사진을 찍고 작은 생일파티를 하며 좋은 한때를 보낸다. 서연은 나중에 자기가 살고 싶은 집을 메모지에 그리며, 승민에게 나중에 공짜로 지어줘야 한다며 웃는다. 그때 나누던 대화들.
“우리 십 년 후엔 어떻게 되어 있을까?”라고 허공에 띄워본 질문이라던가,
“나는 피아노 안 해. 아나운서 돼서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 거야.”라고 자기 스스로에게 약속하듯 읊조리는 장면.
10년이 지난 후, 서연이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피아니스트도 아나운서도 되지 못한 걸 이미 알고 있어서 뭉클했던 그 장면.

동시에 내 모습이 겹쳐 보인 장면이기도 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친구와 얼굴을 마주보고 “우리 십 년 후엔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라거나 “너는 과연 어떤 사람과 결혼하게 될까?”라거나 남자친구와 함께 “내년 이 맘 때 우리, 어른이 됐을 때 우리”를 상상했던 때, 내 앞에 나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던 때가 떠올랐다.
불현듯, 그때로부터 10년이 훌쩍, 지났다는 것도 깨달았다. 지금의 내가 10년 전 그토록 궁금했던 시간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 당시로는 상상하지 못한 장소에서 상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묘한 괴리감. 그때와 10년 멀어진 데에서 오는 묘한 쓸쓸함. 그 시간이 아련하게 느껴졌다. 농담처럼 “이런 게 정녕 ‘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인가.”라며 웃었지만, 마치 그 시간이, 그때의 나와 네가, 그때 나눈 말들이, 그때 상상했던 모든 것들이 첫사랑처럼 다가왔다.
그날로부터 나만 혼자 멀어진 듯한 쓸쓸함

어른이 된 승민이 미국에 가기 전, 집에서 엄마가 차려준 순대국을 먹는다. “너 이제 미국가면 이런 거 먹지도 못할 텐데.”
승민은 혼자 한국에서 쓸쓸한 여생을 보낼 엄마가 안쓰럽고 신경이 쓰인다.
엄마가 아파트에 들어가 살면 승민의 맘이 편할 텐데, 엄마는 그저 낡은 집처럼, 거기에 머물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엄마들은 참 변하지 않는다. 10년 전 승민이 입던 낡은 티셔츠까지 그대로 입고 있는 엄마는 냉장고를 정리하지 못하는 습관도 여전하다. 세월을 통과한 머리만 희끗해졌을 뿐...
변하지 않는 것들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줄까

승민이 어른이 되었을 때, ‘납뜩이’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함께 미래를 꾸려갈 새 여자친구가 그의 곁에 있다. 시간이 흘러도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은 아련하다.
과거가 그렇고, 첫사랑의 그녀가 그렇고, 10년 전에 꾸었던 꿈들이 그렇고, 엄마 같은 존재가 그렇다. 그것은 단순히 아련함으로만 존재하는가? 변하지 않는 것들과 변하는 것들은 각각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 걸까? 결국 영화가 던진 질문은 이런 것이기에, 15년 만에 재회한 승민과 서연의 사랑이 이루어지거나, 이루어지지 않아도 크게 상관이 없어졌다.
승민은 제주도에 지은 서연의 집에, 어렸을 때 키를 잰 흔적, 마당의 아이 발자국 흔적을 그대로 남겨둔다. 우리의 현재가 과거를 품고 있듯이, 새로 지은 집 역시 과거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서연의 아빠가 “이제서야 집 같네”라고 만족했던 집은 과거의 집의 형태에서 연장선상에 있던 구조였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든 하지 않든 기억은 무의식 속에 그렇게 축적되고, 그 축적이 우리의 삶을 앞으로 밀고 나간다.
그렇게 변하지 않는 것이 나에게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앞으로도 변하지 않은 채로 나와 함께 가게 될 거라고 인정하는 순간이 있다. 그제서야 승민과 서연은 전람회의 음반, 집의 모형도 같은 것을 웃으면서 바라보게 된다. 우리가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품어왔던 기억, 물건, 추억들은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화해하기도 하고, 승민과 서연처럼 사건을 통해 극적인 화해를 하기도 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김동률의 <기억의 습작>이 흐를 때, 저마다 어떤 기억이 떠올랐을 테다. ‘왜 그 생각이 나지?’ 수면 아래 묻혀있던 기억이 떠올랐을지도, 혹은 화해하지 못한 기억이 떠올라 밤새 뒤척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나 역시 피해가지 못한 ‘아련아련 증세 호소’는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첫사랑과 첫눈
첫사랑과 첫눈이 닮은 점은
둘 다
눈부시다는 것이다
첫사랑과 첫눈이 같은 점은
둘 다
가슴이 벅차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는 카피처럼
첫눈 내리던 날,
누구나
첫눈에 빠져 미끄러지고
첫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린 적이 있었다
첫눈은 녹아서
얼어붙은 대지에 스며들고
첫사랑은
면바지에 든 풀물처럼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응어리로 남았다